불교가 미신이다? – Part 3: 기복은 정말 나쁜 것일까?

복을 빈다는 의미의 기복祈福은 한국불교가 미신이라는 혐의의 결정적 증거처럼 쓰였습니다.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누군가가 처음 쓰기 시작한 그 말속에는 삶의 행복을 기원하는 일이 미개하고 유치한 것이라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똑똑한 학자들은 기복을 없애야 한국불교의 미래가 열린다 끊임없이 얘기했고, 그 말에 부응한 스님들은 기복을 서둘러 극복해야 한다며 믿음의 불교가 아닌 학문과 지식의 불교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이 했던 참선/명상이 수행 중에 으뜸이라 말하며 스님이 아니더라도 모든 불자는 복을 비는 염불/기도보다는 참선을 해야 한다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최근 미국의 명문대를 졸업하고 출가하여 한국불교의 승려가 되어 유명해진 한 미국인 스님도 한국불교가 기복을 이용해 돈벌이에만 관심이 있다며 그것을 비판했었지요. 

종교에 나타난 기복의 보편성

그런데 궁금한 것은 기복은 정말 나쁜 것일까요? 스스로의 종교적 믿음 가운데 삶의 행복을 기원하고 바라는 일이 정말 남부끄러울 정도로 창피하고 잘못된 일일까요?

삼일을 굶고도 남의 집 담장을 넘지 않기가 어렵다 했습니다. 육신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주린 배를 채우며 살아야 하는 존재이지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주린 배를 채우기 힘들었던 먼 옛날에 사람들은 보이지 않게 저 뒤에서 앉아 자연과 생명을 움직인다 여긴 존재들을 향해 삶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였습니다. 삶의 행복과 물질적 풍요, 즉 복을 기원하는 일은 이처럼 인류의 오랜 일이고, 종교는 풍전등화 같은 삶 속에서 사람들이 마지막처럼 기댄 언덕이었습니다.

기복은 이처럼 불교만이 특별히 가지는 것이 아니며, 사람의 고통을 위로하는 모든 종교가 함께 나누어 가지는 것일 테지요. 지식의 축적으로 과학과 문명이 끝없이 발달하고 그로 인해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행복을 향한 인간의 염원과 기원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복을 비는 일은 그런 인간의 실존의 문제와 맞닿아 있는 것으로 유치한 것도 부끄러운 것도 아니며, 모든 종교는 그것을 함께 나누어 가집니다.

기복(祈福)보다 기복(起福)

그럼에도 한국 불교의 의식 가운데 삶의 행복과 물질적 풍요를 바라는 기복적 요소들이 유난히 두드러져 보이는 이유는 아마도 바른 삶의 실천으로 기복起福, 즉 복을 일으키라고 하신 부처님의 가르침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다시 말해서 불법승 삼보에 대한 바른 믿음을 바탕으로 팔정도를 실천하여 바른 삶을 살고 끊임없이 보시를 실천하면, 연기의 법칙에 의해서 삶 가운데 좋은 결과가 나타난다고 부처님은 자주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복을 일으키는 기복起福은 콩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은 곳에 팥이 나는 연기의 법칙에 바탕을 두며, 이것은 미신 관계가 없는 우주의 법칙이자 삶의 원리일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의 가르침은 복을 비는 기복(祈福)전에, 올바르고 선한 삶의 실천을 통해 복을 일으키라는 의미의 기복(起福)을 강조합니다. 눈먼 제자가 바늘 귀에 실을 못 꽂고 주위에 도움을 청하자, 조용히 다가가신 부처님은 바늘에 실을 꿰주시며, 여래보다 복은 많이 짓는 자는 세상에 없다 말씀하시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합니다.

기복(起福), 함께 행복한 세상

실천없이 복을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믿음일테지만, 꾸준한 선행의 실천을 통해 복을 일으켜라 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은 법칙이지 진리입니다. 불교의 경전은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 수행자들, 일반 사람들, 동물 등등에 베푸는 모든 종류의 보시와 선행이 복을 일으키는 일이며 삶의 좋은 과보를 가져온다  분명히 설명합니다.

복을 비는 기복보다 바른 삶으로 복을 일으킬 것을 강조하는 불교는 나와 세상이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렇게 베푸는 것으로 모두가 다같이 함께 행복해지는 것, 그것이 불교에 말하는 기복의 진정한 의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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