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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業) – 인연의 밭 위에 뿌리는 우리 마음의 씨앗

인연이라는 말과 함께 업이라는 말은 굳이 불자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쓰는 말이지요. 사람들은 보통 업이라는 말로 자신의 능력 바깥의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외부적 힘 또는 운명을 표현합니다.

야심 차게 준비한 사업이 난관에 부딪치거나, 또는 대쪽같이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 그리고 뜬금없는 소문으로 마음이 괴롭고 어두워질 때, 우리는 스스로가 업이 두껍다 생각을 하거나 또는 업이 두껍다는 말을 누군가로부터 듣습니다. 업이란 것이 나무 판떼기같이 만져지는 것이 아닌데, 업이라는 물건이 있어 그것이 우리의 앞길을 막는 것처럼 얘기를 합니다.

업에 대하여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표현이 맞는다면 내 업의 두께 혹은 사이즈는 얼마만큼일까 궁금한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경전과 그 안의 부처님의 가르침은 정확히 업을 어떻게 설명하셨을까요?

업이 두꺼운 나…

오래전 어느 여름 안거를 함께 살던 한 스님은 본인의 수행과 기도가 뜻처럼 되지 않을 때면, “업이 두꺼바서….” 라는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혼잣말을 했습니다. 번잡한 도시에서 떨어진 조용한 산사에서 여러 스님들과 함께 안거를 치르는 동안에도 가끔 가족 혹은 지인들이 이런저런 일로 스님을 찾았습니다. 모처럼 수행에 집중을 하겠다 제대로 마음을 먹고 찾은 여름 안거였지만, 계획과는 다르게 여전히 번잡한 일들이 끊이지 않았고요.

사람들이 돌가고 선원의 차실에 돌아온 스님은  “업이 두꺼워서…”라는 말을 혼자맛처럼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조적인 한탄 속에는 자신의 의지대로  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으로 가지 못하는 수행자의 쓸쓸함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이 말씀하신 업의 참 의미를 모를 리 없는 스님의 “업이 두꺼워서”라는 한탄은 분명 어찌할 수 없는 운명과 소위 팔자라는 것에 대한 절망의 표현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번잡한 일들이 계속되는 가운데에도 스님은 묵묵히 여름을 견뎠고 그 후도 오랫동안 꾸준히 안거를 다니며 계속 수행에 대한 노력을 이어갔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의도를 가지고 하는 행동

업(karma, kamma)의 사전적인 의미는 일차적으로 ‘행동’이라고 합니다. 불교는 인도라는 종교의 백화점 같은 곳에서 탄생을 했고,  불교의 여러 단어들처럼 업이라는 말도 불교가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사용이 되었다 하지요.  불교적 윤회의 개념이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뜻과 조금씩 차이가 있듯이, 불교의 말하는 업(karma, kamma)의 뜻도 또한 마찬가지로 차이가 있습니다.

“비구들이여, 나는 업을 의도라 설명한다. 의도를 통해서 사람은 몸으로 말로 마음으로 행동을 한다.”

(앙굿따라 니까야:03:415) 

위에 경전에서 인용된 부처님의 말씀에서 보는 것과 같이, 업은 단순히 사람들이 하는 모든 행동을 뜻하는 것이라, 선한 마음 혹은 선하지 않은 마음 등의 의도를 가지고 지은 행동을 뜻한다 경전은 설명합니다. 그 의도를 가지고 한 삶의 셀 수 없는 행동들은 그에 상응하는 결과(과보)를 (1) 지금의 삶에서, 혹은 (2) 이 생이 가고 다음의 생에서, 마지막으로는 (3) 때를 알 수 없는 어느 생에는 반드시 나타낸다는 것이 업과 업의 결과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뜻일 것입니다.

업과 업의 결과는 어찌보면 원인과 원인에 따른 결과를 설명하는 원리 혹은 법칙입니다.  그것이 과학에서 말하는 자연의 법칙과 다른 점이라면 업의 윈리는 인간의 마음과 마음으로 지은 행동이 인연이라는 관계의 그물안에서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설명한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과학의 물리학이 물질의 모습과 그 움직이는 모습을 설명하는 것처럼,  불교의 업은 마음이 인연가운데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설명하는 것이 아닐까합니다.

마음의 흘러가는 모습

업의 기본적인 의미가 사람이 의도를 가지고 한 행동이 그에 따르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뜻에서 본다면, 첫째로 업은 사람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가져야 하는 삶의 책임을 얘기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본인의 삶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말로 업을 바라보면, 현재 겪고 있는 삶의 행복도 불행도 그 원인이 고스란히 나에게 있으므로 남을 탓하거나 운명을 원망할 이유가 사라질 것이니까요.

그런면에서 앞서 소개한 스님이 “업이 두꺼워서”라는 한탄은 외부적 환경과 운명론에 대한 절망이 아닌,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한 책임의 통감과 반성, 더 나아가서 참회의 의미에 가까울것 같습니다. 업을 잘 이해하는 불자들이 삶의 고통과 절망을 남을 원망함 없이 묵묵히 견디고 인내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바깥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지은 것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의도를 가지고 하는 행동이라고 업을 설명하지만 한가지 주의할 것은, 그 의도된 행동이 내가 의지를 가지고 완벽하게 통제하고 조정하는 행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업은 의도된 행동이라 표현하지만 그 의도된 행동 속에서는  윤회를 통해 혹은 자라온 환경을 통해 형성된 습관적 생각과 행동을 포함합니다.

바꾸기 힘든 습관

이것이 많은 사람이 자신의 삶을 바꾸려 노력을 하지만 쉽게 바꾸지 못하는 이유일테죠. 좀 더 나은 모습과 원하는 방향의 삶의 성취를 위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노력을 하지만 맘처럼 되지를 않습니다. 이렇게 업이 습관 혹은 경향성을 가진다는 뜻에서 스님들은 자주 업에 끄달린다는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담배 혹은 술을 끊고 싶으나 그것이 맘처럼 쉽지 않은 경우가 흔한 예일 테고요. 내 삶이지만 그것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 때 우리는 내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다는 말을 합니다.

이처럼 불교에서 말하는 업의 의미는 의도된 행동이지만 한편 의지와는 상관없는 반복적인 습관과 행동을 의미합니다. 업이 두껍다는 말의 의미도 우리가 가진 행동의 습관을 나무 분지르듯 부러뜨리기가 쉽지 않다는 은유적 표현일 것이고요. 이때문에 사람은 모두가 제각각 자신의 업이 특별히 더 두껍다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두껍고 만년설 혹은 빙하 같은 업이라 하더라도 노력과 수행을 통해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새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불교가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인연의 밭위에 뿌리는 마음의 씨앗

불교적 업의 의미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한 사람의 의도된 행동은 언제나 인연이라는 관계의 그물 안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이 아닐까 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업은 어쩌면 인연이라는 불리는 마음의 밭 위에 우리의 마음을 씨로 뿌리는 것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스스로의 잘못된 행동으로 받는 처참한 삶의 결과들은 오롯이 나의 책임이지만, 업이 돌아가는 모습은 언제나 인연 속에서 일어나는 일인지라 한 사람의 불행은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 즉  가족 혹은 친구들에게도 영향을 주니까요. 또한 반대로 나의 노력을 통한 삶의 성취와 행복은 동시에 주위를 희망차고 행복하게 합니다.

결론적으로 불교적 업은 단순히 의도된 행동 이상의 의미로, 그것은 불교에서 설명하는 마음이 흘러가는 윈리와 법칙이며, 쉽게 바꿀 수 없는 습관적 행동,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엄중한 책임과 동시에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함께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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