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이야기

맨충남 공주의 외진 시골 마을에 위치한 고등학교에 다니던 때, 자주 다투던 학교 친구가 있었습니다. 서로의 눈에 서로의 말과 행동이 거슬렸던 모양이지요. 전교생이 모두 기숙사에 살아야 하는 학교였던 터라 수업이 파하면 안 봐도 그만인 경우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주는 것 없이 서로 미워하며 살다 3학년이 다 되어 졸업이 가까워져 올 때쯤, 다른 친구들을 통해 우연히 몰랐던 친구의 가족 얘기를 전해 듣습니다.

친구의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후 어머니는 직업 군인 하사를 만나 곧 재혼하셨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간의 미움이 미안함으로 바뀌었습니다. 지금 여기서는 흠도 아니지만, 재혼이 자랑이 아니었던 그때 그곳에서, 만일 더 일찍 그 이야기를 알았더라면 우리 사이 쓸데없는 감정의 소모는 없었겠지요.

철없이 이유 없이 사람을 미워하던 시절은 지나갔으나, 떠올리면 마음에 앙금을 남기는 인연들은 출가하고도 항상 주위에 한둘은 있었습니다. 어울려 살아야 하는 관계 속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서운함이 남고, 서운함이 깊어져 자주 원망하고, 원망은 멈추지 않아 미움으로 변했습니다.

보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인연은 오늘 쓸어도 내일이면 수북이 다시 떨어지는 가을 낙엽 같은 것이라 원하건 원치 않건 오늘 다시 “당신을” 마주해야 합니다. 좀 더 내가 당신의, 당신이 나의 살아온 궤적을 안다면 우리 사이의 감정의 앙금이 녹을까요?

내가 모르는 당신의 이야기, 당신이 모르는 나의 이야기…

벌써 해를 넘기려 해가 짧아지고, 이런저런 이유로 듣지 못했던 당신의 이야기가 문득 궁금해지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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