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가 미신이다? – Part 1: 말의 폭력

‘나’라고 쓰인 높은 디딤돌

거미줄처럼 엮인 사람의 관계 속에서 ‘나’는 그곳의 구심점이자 주인공입니다.  그 관계의 중심에는 ’나’라고 쓰인 높은 디딤돌이 놓여있고, 그 돌을 밝고 올라서서 우리는 밖을 향하여 눈 아래로 세상을 내려다봅니다. 배행기의 좁은 창으로 내려다 본 세상이 장남감같이 보이듯이, 나라고 쓰인 아만의 디딤돌에 올라서서 보는 세상과 그 속의 사람들의 삶이 하찮고 시시해 보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가진 자기중심성은 아전인수 격으로 항상 자기 논에 먼저 물을 대고, 자기에게만 이롭게 삶을 해석합니다. 그리하여 나는 진실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고, 남들은 불장난을 하는 철모르는 애라 생각을 하고,  내 믿음은 진짜 종교이고 타인의 믿음은 근거없는 미신이라는 억지 주장을 합니다. 

그렇게 ‘나’를 중심을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중심성은 더 나아가서 자신이 믿는 종교를 우위에 두고 남이 믿는 종교를 아래로 두어 잣대질을 합니다. 낙서 금지라 벽에 쓰는 본인이 낙서를 하고 있는 것을 모르는 것과 같은 것일 테죠. 해서 내가 믿으면 바르고 이성적인 종교이며, 남이 믿는 것은 미신이라 생각합니다. 세상의 중심에 섰다는 되지도 않은 착각을 하며, 그들은 창조주이자 유일신인 하나님을 믿는 것은 이성적인 것이고, 불교와 여타 다른 종교를 믿는 것은 미신이고 우상숭배라는 정신나간 주장을 아무 죄의식없이 퍼트렸고, 아직도 조용히 퍼트리고 있습니다.

다른 믿음에 대한 정신이 온전치 못한 주장

그처럼 아만의 디딤돌을 밟고 올라서서 다른 믿음에 대하여 우숭숭배다 혹은 미신이라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주장은 끈질기게 교묘하고 지독했습니다. 그것은 그냥 말로써 끝나지 않았고,  오랫동안 불자들의 믿음을 괴롭게 하였고, 여전히 지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은 말이 가진 본연의 힘을 이용한 폭력이었으며, 그 폭력은 아직도 진행 중이지요. 아들, 딸, 며느리, 손자들은 왜 미신을 믿냐는 질문으로 절로 향하는 나이 드신 보살님들의 발걸음을 자주 무겁게 만듭니다.

슬프게도 이 종교에 대한 말의 폭력은 힘을 앞세워 한 나라가 한 나라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제국주의 역사와 그 시작을 함께 합니다.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오랜 역사 속에서 동양과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은 착취와 억압을 당하는 동시에, 야만적이다 열등하다 저열하다는 등등의 말의 폭력에 시달렸지요. 그 말의 폭력은 지독하고 교활하게 오랫 동안 진행이 되었고,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그 잔인한 힘과 말의 폭력은 나와 우리의 행복을 위해 너와 너희들을 희생시켜도 된다는 이기적 욕심이 그 시작인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입니다.

말의 폭력

흥미롭고도 슬프게 타인의 착취와 폭력에 희생을 당한 ‘우리’ 사이에서,  또다시 근거 없는 말의 폭력이 다시 행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 폭력은 더 지독했고, 이것은 마치 식민지 시대 일본의 순사들 보다, 순사의 앞잡이를 섰던 조선의 사람들이 더 악랄했던 것과 비슷한 경우 같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종교적 삶에서 일어났던 다른 믿음에 대한 말의 폭력은 이제 멈춰야 하며, 우리는 종교의 보편성과 차별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 멈추게 만들어야 합니다.

여기서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은 이 글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혹은 다른 종교를 공격하고자 하는 의도로 쓰인 글이 아닙니다. 단지 무지에 기인한 잘못된 비방에 상처받은 불교인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하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이며, 더 나아가 타자에 대한 폭력을 멈추어 달라는 부탁인 동시에, 그 폭력을 멈추어야 한다는 우리 불교도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합니다. 몇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지금 일어나는 불교 민족주의를 보자면 이제 우리 불교도 그 말과 힘의 폭력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반성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세상과 삶 그리고 인간에 대한 바른 이해

그렇게 불교가 미신이며 우상숭배라는 근거 없는 비방은 인간의 뿌리 깊은 이기심이 만든 타자에 대한 말의 폭력입니다. 그것은 수많은 종교적 믿음들이 보이는 비슷한 성격, 즉 종교의 동질성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부처님이 말씀하시듯 세상과 삶 그리고 인간에 대한 바른 이해를 통해 사라져야 합니다.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스스로가 믿고 받드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테죠. 그러나 내 종교적 취향과 자부심이 남이 믿는 종교에 대한 폄하와 폭력을 의미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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