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가 우상숭배다? – Part 3: 절의 숭고한 의미

절에 가는 사람에게 타종교인 왜 완벽한 절대자, 신이 아닌 사람의 형상 앞에 절을 하냐 곧잘 묻습니다. 자식에게 혹은 손자들에게 이 질문을 받은 어느 마음씨 좋은 보살님은 자기가 말을 조리 있게 못해 설명을 잘 못했다 하며 그 아쉬움을 저에게 토로하셨습니다. 왜냐면 저 질문의 밑바닥에는 불교는 우상숭배라는 야유의 어조가 담겨 있고, 보살님은 부처와 부처에 대한 믿음을 잘 보호하지 못했다는 자책을 느꼈기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참 안타깝게도 왜 사람을 숭배하냐는 묻는 저 질문 안에는 사람과 인간성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저 고약한 질문을 받은 우리 불자는 왜 사람이 아닌 토끼 뿔같이 존재하지 않고 환상 같은 신을 숭배하느냐 되물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신이 있고 그것을 경험했다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어디까지나 주관적 경험의 세계임을 우리 모두 압니다. 그래서 절대자, 창조주라는 신의 존재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토끼 뿔처럼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환영과 환상과 같은 것이라 우리는 얘기할 수 있지요.

하지만 종교적 체험이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믿음의 세계이기 때문에 이런 식의 논쟁 또한 끝없이 무의미한 말의 평행선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해서 우리 불자는 타종교의 비합리성을 공격하는 일을 멈추고, 절이라는 숭고한 행위를 통해 불교가 전하고자 하는 깊은 의미를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절은 절을 하는 곳이고, 우리 불자는 불상에 절을 합니다. 지극히 고마운 존재를 향해 스스로의 몸을 낮추는 이 숭고한 행위는 불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차별점을 잘 보여주지요. 그것은 불교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의한”종교적 삶의 믿음이라는 사실이고, 몸을 낮추는 절은 첫째로 사람이 얼마만큼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인가를 보여준 스승에 대한 감사의 표현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절은 ‘꽃보다 아름답고 위대한’ 인간성에 대한 믿음의 표시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노력을 통해 스스로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실현하여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인간, 부처가 된다는 확신과 믿음을 불자는 절을 통해 표현합니다. 몸을 낮추는 행위를 통해 위대한 인간성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며, 스스로 부처가 되겠다는 불자의 간절함과 절심함을 상징합니다.

마지막으로 무아, 무상을 기본으로 하는 불교의 가르침은 내가 없는 삶, 즉 이기심이 없는 삶의 실천을 끊임없이 강조하며, 절은 우리들 마음 가운데 있는 뿌리 깊은 이기심을 비우는 수행입니다. 몸을 저 땅바닥으로 낮추어 끊임없이 자라는 이기심과 욕심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 절이 가진 숭고한 의미일 것입니다.

절은 이처럼 깨달음을 이룬 위대한 인간에 대한 존경의 표시이고, 부처가 되겠다는 우리의 다짐이며, 이기심을 극복하여 남과 함께 조화롭게 살고자 하는 우리의 실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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