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 “왜 불교를 믿어요?”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선 우리는 항상 카운터 뒤의 다양한 메뉴를 보고 잠시 주문을 주저합니다. 이미 결정을 했다 생각해도 눈앞에 마주한 여러 선택의 가능성에 잠시 고민을 하지요. 첫 생일의 돌잡이서부터 사람은 간단없이 삶의 여러 가지 크고 자잘한 문제에 대한 결정과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인생의 수 많은 선택의 결과들이 모여 지금 우리 삶의 구체적인 모습을 이루고 있습니다.

누구는 부모님이 불교라 자연스럽게 불자가 되었다 하고, 누구는 종교가 없다 어느 스님의 책을 읽고 불교에 입문했다 하며, 누구는 교회에 다니다 어떤 계기를 통해 개종을 했다 얘기합니다. 흘러온 길이 조금씩 다를지라도 저마다의 생각과 결정 그리고 선택을 통해 우리는“나는 불자다”라 얘기합니다.

“왜 불교를 믿어요”“왜 스님이 되셨어요?”

사람들은 종종 타인이 택한 삶의 결정과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왜 믿음의 대상으로 신이 아닌 깨달음을 이룬 인간을 택했냐 누구가 제게 묻는다면, 모순과 불합리, 불공평으로 가득해 보이는 삶과 세상에 대한 부처의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이 진실에 가장 가까울 것 같다는 제 내면의 ‘느낌’때문이었다 대답해야 할 것 같습니다.

믿음이 그리는 삶의 모습

어릴 때 키워주신 외할머니가 교회 집사이셨고 자주 그녀의 주름진 손을 잡고 교회와 기도원을 다녔기에 불교는 분명 남의 종교였지요. 하지만 사춘기를 거쳐 자라며 신이 칠일을 거쳐 세상을 창조했다는 이야기보다 윤회와 연기로 설명하는 존재의 구조와 흐름의 그림이 더 진실일 것 같다는 ‘느낌’받았지요.  그 시작의 아련한 ‘느낌’은 내가 처한 고통의 삶 가운데에서 점차 확신이 되어 결국 믿음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불교에 대한 믿음이 서서히 자라나던 중 이런저런 계기들을 통해 출가를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 그 생각을 해본 것이 열아홉 혹은 스무 살 즈음인 것 같고요. 지금은 시간이 제법 흘러 정확히 왜 절에 가 살고 싶었는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젊은 시절 우울한 시간이 길었고, 그러다 불교를 알게 되어 얼굴이 조금 밝아졌던 것 같습니다. 그 후 열심히 살자는 생각을 하여 다시 대학에 갔고, 그 사이 출가를 해볼까 잠깐 생각을 했지만 행여나 하는 마음에 그 생각을 밀쳐 두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한 비구니 스님에게 출가 권유를 받았고, 머리를 깍고 절에 사는 생활도 나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200년 7월 해인사를 찾아 갔습니다. 믿음으로 출발한 출가의 결정은 삭발염의 하여 절에 살고 있는 지금 제 삶의 모습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삶의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지금 다시 누군가 왜 불교를 믿고 스님이 되었냐 묻는다면 이렇게 다시 대답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부처님이 하신 삶의 고통에 관한 윤회, 업, 연기의 설명이 저를 설득했고, 그래서 그의 가르침을 진실이라 확신했으며, 또한 그의 제자인 스님들의 삶이 진정 의미가 있다 생각하고 믿기 때문이라 대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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